전통시장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먹거리다. 탁배기 한 사발에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던 장터국밥은 예나 지금이나 전통시장 대표 먹거리 중 하나다. 함양의 전통시장을 대표하는 지리산함양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함양읍 지리산함양시장 내 맑은 장터 인근에는 10여개의 식당이 모여 있다. 그 중에서도 국밥집이 단연 ..
열여섯, 세상물정 몰랐던 나이에 시집와 반백년을 살았다. 아무 것도 없었는데 열심히 살면서 대궐 같은 집에 논밭도 장만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석꾼이다. 요즘은 틈틈이 부각을 만들어 파는 재미도 쏠쏠하다.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창원마을 마귀인(69)·오상열(81)씨 부부는 지난 겨울 지인의 부탁으로 ..
축구선수에이전트, 기계류 해외수출 영업 담당, 국내 대기업 카레전문점 점장. 함양읍 연밭사거리 남양떡방앗간 임동현(41)씨가 귀향하기 전까지 직장생활을 했던 범상치 않은 경력이다. 임 씨는 경상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해 3학년을 마치고 스포츠마케팅을 배우기 위해 미술을 전공하던 약혼녀와 축구종가..
“결혼할 생각이 없었는데 신랑될 사람을 보는 순간 마음이 달라졌다. 평소 생각하던 이상형이 내 눈앞에 나타난 거야. 지금도 아까바(아까워)서 힘든 일은 시키기가 싫어.” 함양읍 학사루3길 9-9 퇴근횟집 김삼달(65) 씨는 지금의 남편을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해 여태 콩깍지가 씌어있다고 한다. 1955년 수동면 우..
“먹고 살기 바빠 자식들 입학식이나 졸업식 한번 가지 못했다. 군대 생활하던 아들 면회도 한 번 가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지만, 작은 아들은 젖배까지 곯아 몸이 약하다. 고등학교를 진주고로 진학해 일찍이 자취생활을 했다. 한창 잘 먹여야 할 나이에 제대로 챙겨 주지 ..
“방앗간도 18년을 했고, 목욕탕도 30년을 했으니 돈은 많이 벌었지. 다 모았으면 부자 됐을 건데 엉뚱한데 다 보태주고 모은 게 없어. 그래도 이렇게 살아 있으니 감사할 일이지...” 함양읍 용평5길 지리산함양시장 제2주차장 옆 태양탕 안주인 정봉순(77) 씨는 몇 차례나 큰 수술을 받은 남편(이경문·79)이 지금..
“지상파방송 유명 맛 대결 프로그램 출연 요청도 거부했다. 방송에 나가면 홍보효과도 그만한 게 없겠지만 손님과의 약속이 더 중요하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미 사시사철 문전성시를 이루는 맛집이다.
“호적에는 1922년생으로 실려 있어. 22****-192****이 내 주민등록번호야. 옛날에는 새벽닭이 울어야 새날로 쳤으니까 22년생인데 실제 태어난 시간이 새벽 두 세시쯤 됐다고 하니 23년생인 셈이지... 일제강점기를 살았고 6.25를 겪었다. 초근목피로 연명했던 보릿고개도 생생하다.” 백전면 백운리 하조마을 김형..
“중학교 진학은 생각도 못했다. 한 입이라도 덜기 위해 일찍이 기술을 배웠다” “우리 때는 거의 다 그랬어. 부잣집이나 중학교, 고등학교를 보냈지 초등학교도 겨우 졸업했는데 중학교를 어떻게 다녔겠어. 꿈도 못 꿨지...” 함양읍 용평길 31-17 함양오토바이 김종수(59) 대표는 열네살 어린나이에 오토바이 수..
“캠핑카에 벽난로를 들여와 캠핑카의 취약점인 난방문제를 해결했죠. 장작 2~3개면 6시간은 거뜬합니다. 저렴한 연료로 효율은 전기나 기름에 비해 몇 배나 높은 게 제가 만든 국내 유일의 캠핑카입니다.” 함양읍 이은농공단지 내 훼밀리캠핑카 노균식(56) 대표는 “아직 해외에도 벽난로를 설치한 캠핑카는 없는 ..
“전설은 전해온 이야기라도 역사다”는 문호성(66) 함양군서복연구회장은 2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2200여년전 진시황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찾아 함양에 온 서복(徐福) 일행의 발자취 찾기에 온힘을 다하고 있다. 2020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가 열리는 함양군이 2000여년 전부터 불로초의 고장이었다는 것을 입증해 엑..
‘경남 함양(咸陽) 사람이다. 1910년 경남 진주에서 한문교사로 후진을 양성하였으며, 1913년에는 경남일보 주필로 계몽운동에 힘썼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동년 4월2일부터 6월20일경까지 함양군 지곡면 정치리에서 유생 박재룡(朴在龍)과 같이 조선독립선언서·독립충고문·조선독립가·조선독립경포서..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6촌 형님을 따라 대구에서 금은 세공기술을 배웠다. 방위병 근무를 하면서도 근무 날이 아닌 때는 세공공장에 출근해 돈을 벌어야했다. 43년째 고향을 지키며 금은방을 운영하고 있다. 함양군 금은방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다. 함양읍 함양로 1128 하약국 건물 1층 보옥당 임병택(..
“팔십까지만 하고 그만할까 생각했는데 돌북교 재가설로 이 일대가 수용돼 가게를 더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됐다. 단골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 오래오래 장사하라는 데 나이도 있고 몸도 예전 같지가 않다. 이제 쉬어야지,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다시 하겠노.” 돌북교 인근 ‘족발집 이모’로 통하는 한분임(79) 씨의 ..
“그동안 겪었던 고생은 말로 다 못한다. 이야기 하자면 몇 날 며칠을 해도 모자라지. 나는 얼마나 장사를 더할지 모르지만 전통시장을 많이 이용해 주었으면 좋겠어.” 50년이 넘게 생선과 건어물가게를 하며 원조 지리산함양시장 상인으로 사는 옥계상회 양옥식(76) 씨의 말이다. 양 씨는 지리산함양시장이 시장의..
“상림숲 반달곰, 남강댐 물문화관 수달벤치, 창원 문화의 거리 악사, 포항 호미곶 돌문어, 진주 수곡면과 대평면 딸기, 양산미디어박물관 공룡, 강원도 횡성 한우 조형물 등이 제 작품이죠. 제가 만들어 설치한 조형물이 전국에 60여점 정도 됩니다.” 부산대 미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부산에서 활동하다 6년전 고..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신뢰를 팔아야한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그래서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쌓고 유지하는 것은 농사짓는 일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명품 함양곶감을 생산·판매하는 곰실곶감영농조합법인 박효기(49) 대표는 상품을 파는 것보..
“고기는 연탄불에 구워야 제맛이지. 우리집은 1년 열두달 연탄불이 꺼지지 않는다.” 함양읍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서 가장 오랜기간 식당을 운영하는 칠성식당 박성자(69)씨는 38년 동안 ‘연탄불 맛’을 전하고 있다. 함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만 35년 붙박이다. 사업을 하던 남편이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는 바..
“제사공장(製絲工場) 다음으로 함양에서는 직원수가 많았던 곳이 우리 양조장이었다. 70~80년대가 전성기였다. 요즘은 5일에 한번정도 술을 빚지만 그땐 매일 고두밥 찌는 냄새가 진동했다.” 함양읍 유일의 양조장으로 2대째 함양막걸리의 명성을 잇고 있는 함양합동양조장 하기식(69) 대표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열풍으로 한바탕 홍역 아닌 홍역을 치렀던 개평한옥마을에 관광객들과 지역민들의 쉼터로 손색없는 새로운 명소가 문을 열었다. 어쩌면 시골마을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지인공간(知仁空間)’이라는 북카페다. 지인공간은 과천에서 출판업을 하던 김..